에브리맨, 필립 로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몇 분이 안 되어 모두 가버렸다. 지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리 종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활동으로부터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뒤에 남았다. 물론 다른 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비통해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 또는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진정으로 기뻐하기도 했다.
유일하게 불안한 순간은 밤에, 해변을 따라 함께 걸을 때 찾아왔다. 힘차게 쿵쿵거리며 밀려들어오는 어두운 바다와 별이 가득한 하늘 때문에 피비는 환희에 젖었지만 그는 겁을 먹었다. 수많은 별은 그가 죽을 운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이런 공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안간힘을 써야만 피비에게 그것을 간신히 숨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
어머니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던 적은 없었다. 그들은 어머니이고 아버지였다. 그들은 다른 욕망에 물든 일이 거의 없었다. 이제 그들의 몸이 차지하던 공간이 텅 비어버렸다. 평생에 걸쳐 유지되었던 그들의 실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천재의 솜씨라고 부를 수 있는 대목은 이 사업체를 자기 이름이 아닌 ‘에브리맨 보석상’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가게는 그가 일흔셋의 나이에 도매상에 재고를 팔고 은퇴할 때까지 그의 충실한 고객이 된 유니언 카운티 전역의 보통 사람 무리에게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노동자들이 다이아몬드를 사는 건 큰일이야.”
“…어쨌든 자기 마누라가 그걸 끼고 있으면 그 남편은 단순한 배관공이 아닌 거지. 다이아몬드를 손에 낀 마누라를 둔 남자가 되는 거야. 그의 마누라는 썩어 없어지지 않는 것을 소유한 거지. 다이아몬드란 건 그 아름다움과 품위와 가치를 넘어서서 무엇보다 불멸이거든. 불멸의 흙 한 조각, 죽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간이 그걸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다니!”
그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1센티미터씩 사라지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 맨 끝까지 그 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번째 죽음 같았다. 그렇다고 첫번째 죽음보다 덜 끔찍하지도 않은 죽음.
퇴근 후나 주말에도, 그는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싸질러놓은 작디작고 시끄러운 두 생물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난장판이 되어버린 작은 아파트를 점차 떠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갑자기 출판사 일-더불어 부모 노릇-을 그만두더니, 정신을 차리고 끊어진 생각을 다시 이어가고 또 최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미네소타로 돌아가버렸다.
“하지만 현실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는 작은 소리로 말하며 딸의 등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품 안의 그녀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 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마침내 그 소리가 지겨워지자 그는 척 클로스가 어떤 인터뷰에서 한 말을 기억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그들의 어머니나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그는 옳은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이런 비난의 되풀이, 또 두 아들의 입장에서 읊어대는 가족사에 저항하려면 상당한 전투성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이제 그의 무기고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전투성은 거대한 슬픔으로 바뀌었다.
물론 외롭게 살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건 그였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롭게 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상태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을 어떻게든 견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끝장나니까. 과다하다 싶을 정도로 넘쳐났던 과거를 게걸스럽게 돌아보다 마음이 사보타주를 일으키는 것을 막으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림은 귀신을 물리치는 일과 같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악한 것을 몰아내려 했던 것일까? 그의 가장 오래된 자기기만? 아니면 살려고 태어났지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지식으로부터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로 그림에 달려든 것일까? 갑자기 그는 무에 빠져버렸다. 무라는 상태만큼이나 ‘무’라는 말소리에 빠져 길을 잃고 표류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역효과를 내지 않는 것은 없다, 심지어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순수하고 분별력 있는 아이였다. 유일한 결함이 있다면 그 무조건적인 관대함이었다. 순진하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귀중한 모든 사람의 결함을 지워버림으로써, 지나친 사랑으로 사랑함으로써 불행으로부터 숨으려 했다. 마치 건초를 꾸리듯이 용서를 꾸렸다.
그러나 그들은 늘 하던 장소에서 늘 하던 방식대로 그 짓을 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의 행동은 공중그네를 타고 곡예를 하는 것과 다름없어, 모든 것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었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결혼이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절대 두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며 출발점에 섰던 젊은 남자는 이제 도끼로 자신을 쪼개려 하고 있었다.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 밖에 없어, 안 그래?
조수가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을 한참 지켜보다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백일몽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삶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알려진 또는 알 수 없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다시 기억이 났다-편두통, 낸시를 낳던 일, 광고회사에서 피비 램버트와 처음 마주친 날, 상큼하고, 겁에 질려 있고, 흥미로울 정도로 순수하고, 제대로 교육받은 아가씨, 세실리아와는 달리 유년의 혼돈으로 인한 먹구름 없이 맑게 갠 아가씨, 건전하고 말짱하고, 다행스럽게도 잘 폭발하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은 그녀의 모든 것.
또 그녀의 뻣뻣한 아버지에게서 배운 깜짝 놀랄 정도로 예스러운 표현들, 예를 들어 “우리는 심혈을 기울여 이 점을 이해해야 해요”라거나 “그렇게 말해도 과히 지나치다 할 수는 없어요” 같은 표현들을 기억했다. 그는 그런 것들 때문에 그녀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의 사무실의 열린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 오던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도 반하고 말았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에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그는 궁금했다. 뒤에 남기고 가는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도 의연했을까? 모든 기쁨, 흥분하고 기뻐했던 모든 일을 기억하며 울면서도 웃음 지었을까? 당시에는 별 의미가 없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녀의 나날은 잘디잔 행복감으로 넘치게 해주려고 특별히 준비되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수많은 평범한 순간들이 마음을 가득 채웠을까? 아니면 자신이 두고 떠나는 것에 관심을 잃었을까? 오로지, 마침내 고통이 끝나는구나, 고통이 마침내 사라지는구나, 이제 잠이 들기만 하면 이 놀라운 것과 헤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만 하며 전혀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충만함을 버리고 그 무한한 무를 선택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강렬한 일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정말 부당하게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삶을 맛보고 나면 죽음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감당할 수 없었다. 모두가 지금 살아 있기를 바라는 갈망,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갈망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 그 거침없음이여, 짠물과 살을 태우는 태양의 냄새여! 모든 곳을 뚫고 들어가던 한낮의 빛이여. 그것은 눈에 담을 수 있는, 엄청나게 크고 귀중한 보물이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